게리 겐슬러
인물표준Gary Gensler · regulators · economists
게리 겐슬러(Gary Gensler)는 미국의 관료이자 전직 투자은행가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33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냈다. 재임 기간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강경한 집행 중심 규제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개요
게리 겐슬러는 1957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관료이자 전직 투자은행가이다. 2021년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으로 제33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사임했다.
재임 중 그는 암호화폐 시장을 "무법지대(Wild West)"로 규정하고 별도의 디지털 자산 규제 체계를 만들기보다 기존 증권법에 근거한 집행(enforcement) 중심 규제를 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업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이전에 재직했던 MIT 슬론경영대학원으로 복귀해 실무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초기 생애와 월가 경력
겐슬러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1978년 경제학 학사, 1979년 MBA를 취득했다. 이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18년간 근무했으며, 만 30세에 회사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아시아 지역의 채권·통화 거래를 총괄했고 금융 부문 공동대표를 지냈다.
1990년대에 공직으로 자리를 옮겨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와 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인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맡아, 약 400조 달러 규모의 스와프 시장에 도드-프랭크법 개혁을 적용하며 강경한 규제 당국자라는 평가를 얻었다.
3.SEC 위원장 시기(2021–2025)
겐슬러의 SEC 위원장 재임기는 암호화폐 업계와의 대립으로 규정된다. 그는 별도의 규칙 제정보다 집행 조치에 크게 의존했으며, 기존 증권법만으로도 디지털 자산을 규제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암호화폐 토큰(비트코인 제외)을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미등록 증권으로 분류했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이 사기·남용·법규 미준수로 가득하다고 반복해서 경고하며 플랫폼들에 "등록하라"고 촉구했으나, 업계는 이 등록 절차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그의 지휘 아래 SEC는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리플 등 주요 업체들을 제소했으며, 법원이 SEC의 광범위한 관할권 주장에 제동을 거는 등 결과는 엇갈렸다.
4.현물 비트코인 ETF와 SAB 121
2024년 1월, 겐슬러는 미국 최초의 현물 비트코인 ETF 승인에 결정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기관 자금 유입의 분수령으로 평가되지만, 그는 동시에 SEC가 비트코인 자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를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고 표현하는 성명을 냈다.
또한 그는 회계 지침 SAB 121을 지지했는데, 이 규정은 강하게 규제받는 은행들이 암호화폐 자산을 커스터디(수탁)하는 것을 사실상 막는 효과를 냈고, 의회에서 초당적 비판을 받았다.
5.블록체인과 화폐 강의
SEC 위원장에 오르기 전 겐슬러는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실무 교수로 "블록체인과 화폐(Blockchain and Money)"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이 강의 영상은 그의 위원장 재임 중 널리 회자되었으며, 규제 당국자로서의 정책 입장과 모순된다는 지적의 근거로 비판자들에게 자주 인용되었다.
강의에서 그는 이더리움 등 일부 자산이 충분히 발전해 더 이상 증권이 아닐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뉘앙스는 규제 당국자로서의 그의 정책 기조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6.평가와 논란
겐슬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소비자 보호론자와 회의론자들은 그를 약탈적 업계에 맞선 필수적 방벽으로 보며, FTX와 테라 붕괴 같은 사태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한 인물로 평가한다. 반면 암호화폐 업계와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은 그가 "집행에 의한 규제"로 정당한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혁신을 가로막은 걸림돌이었다고 비판한다.
2025년 그의 사임 발표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크게 상승했는데, 이는 그의 임기 종료에 대한 업계의 안도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의 후임 관련 인물로는 폴 앳킨스가 거론된다.
7.연표7건
- 1978이정표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제학 학사 취득
- 1979이정표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취득
- 2009이정표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 취임
- 2017이정표메릴랜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위원장 취임(2019년까지)
- 2021이정표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33대 위원장 취임
- 2024규제미국 최초의 현물 비트코인 ETF 승인
- 2025이정표SEC 위원장 사임(1월 20일)
게리 겐슬러, 어렵지 않아요 암호화폐를 세게 규제한 SEC 위원장 이야기
1. 게리 겐슬러는 어떤 사람인가요?
게리 겐슬러는 1957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사람이에요. 공무원(관료)이면서 예전에는 투자은행가, 그러니까 큰돈을 굴리는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2021년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를 지명해서 제33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됐어요. SEC는 주식 같은 투자 상품이 제대로 거래되는지 감시하고 규칙을 정하는 미국의 기관이에요. 그는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암호화폐 시장을 "무법지대(Wild West, 규칙 없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곳)"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암호화폐만을 위한 새 규제를 따로 만들기보다, 이미 있던 증권법(투자 상품을 규제하는 법)을 그대로 적용해서 잘못한 곳을 잡아내는(집행) 방식을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말이 많은, 논쟁적인 인물로 봐요.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는 예전에 몸담았던 MIT 슬론경영대학원으로 돌아가서 실무 교수로 일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면 쉬워요 · 새 교통법을 만드는 대신, 있던 도로교통법으로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잡아낸 교통경찰 같은 방식이에요.
2. 젊을 때는 무슨 일을 했나요?
겐슬러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1978년에 경제학 학사, 1979년에 MBA(경영학 석사)를 땄어요.
그 뒤 골드만삭스라는 큰 투자은행에 들어가 18년 동안 일했어요. 만 30세에 회사 역사상 가장 어린 파트너(회사의 핵심 임원급) 가운데 한 명이 됐을 만큼 빨리 인정받았어요. 아시아 지역에서 채권(돈을 빌려주고 받는 증서)과 통화(각 나라 돈) 거래를 총괄했고, 금융 부문의 공동대표까지 지냈어요.
1990년대에는 돈 버는 일을 떠나 공직으로 옮겼어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와 차관을 맡았어요.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인 2009년부터 2014년까지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맡았어요. 여기서 그는 약 400조 달러 규모의 스와프 시장(서로 다른 금융 조건을 맞바꾸는 거래가 오가는 거대한 시장)에 도드-프랭크법이라는 개혁법을 적용했어요. 이 일로 그는 규제를 세게 하는 강경한 감독자라는 평가를 얻었어요.
이렇게 보면 쉬워요 · 돈을 벌던 선수였다가 나중에 그 판을 감독하는 심판으로 자리를 바꾼 셈이에요.
3. SEC 위원장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겐슬러가 SEC 위원장으로 있던 시기는 암호화폐 업계와의 대립으로 요약돼요. 그는 암호화폐를 위한 새 규칙을 따로 만들기보다, 잘못한 곳을 찾아내 조치하는(집행) 방식에 크게 기댔어요. 이미 있던 증권법만으로도 디지털 자산을 규제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거든요.
그는 비트코인을 뺀 대부분의 암호화폐 토큰을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미등록 증권으로 봤어요. 하위 테스트는 어떤 상품이 '투자로 돈 벌기를 기대하는 증권인지'를 판단하는 미국의 오래된 기준이에요. 여기에 걸리면 정식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규칙 위반이라고 본 거예요.
그는 암호화폐 시장이 사기와 남용, 그리고 법 안 지키기로 가득하다고 여러 번 경고하면서, 거래 플랫폼들에게 "등록하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업계는 그 등록 절차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발했어요.
그의 지휘 아래 SEC는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리플 같은 주요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다만 결과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엇갈렸어요. 법원이 SEC가 지나치게 넓은 권한을 주장한다며 제동을 건 경우도 있었거든요.
4. 비트코인 ETF는 왜 승인했나요? SAB 121은 뭔가요?
2024년 1월, 겐슬러는 미국 최초의 현물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찬성표를 던졌어요. 현물 ETF는 실제 비트코인을 담아두고, 그 가격을 따라 움직이는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게 만든 상품이에요. 덕분에 기관(연기금·펀드 같은 큰손) 자금이 암호화폐로 들어오는 물꼬가 트인 사건으로 평가돼요.
그런데 그는 동시에 성명을 내서, SEC가 비트코인 자체를 보증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어요. 오히려 비트코인을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 즉 값이 크게 오르내리는 위험한 자산이라고 표현했어요.
또 그는 SAB 121이라는 회계 지침을 지지했어요. 회계 지침은 회사가 장부를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정한 규칙이에요. 이 규칙은 엄격한 감독을 받는 은행들이 고객 대신 암호화폐를 맡아 보관하는(커스터디, 커스터디) 일을 사실상 막는 효과를 냈어요. 은행이 손대기 부담스럽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의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초당적) 비판을 받았어요.
5. '블록체인과 화폐' 강의는 왜 자주 언급됐나요?
SEC 위원장이 되기 전, 겐슬러는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실무 교수로 "블록체인과 화폐(Blockchain and Money)"라는 강의를 했어요.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여러 컴퓨터가 함께 나눠 보관하는 기술이에요.
이 강의 영상은 그가 위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어요. 특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강의에서 한 말과 규제 당국자로서 편 정책이 서로 안 맞는다는 근거로 자주 끌어다 썼어요.
강의에서 그는 이더리움 같은 일부 자산은 충분히 발전해서 더 이상 증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미묘한 뉘앙스는 그가 위원장이 된 뒤 정책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어요. 교수 때 한 말과 감독자로서 한 행동 사이에 온도 차가 있었던 거예요.
6.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겐슬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려요. 한쪽에서는 그를 좋게 봐요.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암호화폐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가 투자자를 등쳐먹는 업계에 맞선 꼭 필요한 방패였다고 여겨요. FTX와 테라가 무너진 사태처럼 투자자가 크게 다칠 뻔한 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냈다는 평가예요.
반대쪽에서는 그를 비판해요. 암호화폐 업계와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집행에 의한 규제'로 멀쩡한 기업들까지 해외로 내쫓고 새로운 시도(혁신)를 가로막은 걸림돌이었다고 봐요.
2025년 그가 사임을 발표한 뒤 암호화폐 시장은 크게 올랐어요. 이건 그의 임기가 끝난 것에 대한 업계의 안도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어요. 그의 뒤를 이을 인물로는 폴 앳킨스가 거론돼요.
토큰포스트 위키, “게리 겐슬러”, 2026-07-29 수정, https://wiki.tokenpost.kr/w/gary-genslerAccept: text/markdown 로 요청해도 같은 결과문단 6개 · 연표 7건 · 각주 0개